궁궐/경희궁 속으로

[경희궁] 흥화문터, 금천교, 흥화문

지니쌤 동진이 2017. 8. 22. 20:44

경희궁은 조선 후기 왕들이 임시로 거처했던 이군이다. 임진왜란 히루 광해군9년(1617년)에 창건하였으며 광해군12년(1620년)에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경덕궁이라고 하였으나, 영조36년(1760년) 경희궁으로 변경되었다. 도성 서쪽에 있어서 서궐이라고도 부른다.
경희궁에는 국종과 영조가 오랬동안 머물렀으며 영조는 경희둥에 대한 글과 글씨를 많이남겼다고 한다.


흥화문은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있다. 현재 위치와 원래 위치는 많이 다르다. 원래 위치는 구세군회관 쪽이었다. 현재는 그 터 표지석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구세군 회관을 비롯해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와서 경희궁의 복원은 힘이든것 같다. 새로운 위치에 흥화문이 있긴 하지만 원래 위치였던 흥화문 터를 지나 경희궁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흥화문터를 지나면 금천교가 있다. 금천교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안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다른 모든 궁과 마찬가지로 정문을 지나 다리를 지나면서 왕이 거하는 궁안으로 들어가게되는 것이다. 다시를 보면 세개의 길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 길은 왕도라 하여 왕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다.

금처교는 홍예교로 두 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다. 난간의 돌짐승과 홍예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밖같의 나쁜 기운이 궁궐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상징적인 열할을한다. 금천교는 일제 강점기때 경성중학교가 설립되면서 땅에 묻혀있었으나 서울 역사발물관이 건립되면서 옛 석조물을바탕으로 2001년에 복원되었다.

경희궁의 정문이다. 다른 궁궐 문에 비하여 왜소하다. 이 문 역시 세개의 문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문은 왕이 지나는 문이다. 그리고 (문 밖같을 기준으로) 우측 문은 문과 관원이, 와즉문은 무과 관원이 다니는 문이다.

금천교는 왕의 공간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다. 왕이 거하는 궁궐이며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2017년 정말로 더운 날씨에 옛 우리 조선의 왕이 거했던 경희궁의 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다듬는다.

일제에 의해서 철거가 되었고, 많이 왜소해저 있는 모습....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일제때 수난을 당했던 궁궐이다.


아래는 숭전문 앞에 써있는 경희궁에 대한소개 글이다.


-아래-


경희궁지

지정번호: 사적 제271호, 시대 1617년 광해군9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문안로 55

이곳은 조선시대의 5대 궁궐로 꼽히는 경희궁 터다. 경희궁은 광해군 때 창건되어 조선 후기 동안 중요한 궁궐로 자리매김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지만 영조때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 부르는데 이 말과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고도 하였다.
원래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과 편전인 자정전 외에도 임금의 침전으로 용복전과 회상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이 있었으며 흥전당과 장락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이 지형에 맞게 어우러져 있었다. 궁에는 정문인 흥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흥원문 서쪽에는 숭의문 남쪽에는 게양문 북쪽에는 무더문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소유가 넘어가면서 전각들이 철거하여 이전되었고 궁역이 축소되어 궁궐로서의 웅장한 면모를 잃었다.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었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이 사라지고 궁궐터도 많이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