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경희궁 속으로

[경희궁] 숭전문, 숭전전, 문계석, 칠조룡. 드무

지니쌤 동진이 2017. 8. 22. 21:42


흥화문을 지나면 숭전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숭전문은 정조가 왕으로 즉위했던 곳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은 보통 직전왕의 장례식때 거행되었다. 왕이 살아 있을 때 양위방식으로 물러 주었을 때는 정전에서 즉위식을 갖지만 죽은 승하한 뒤에는 정전 문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할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된 정조때 조선의 정치는 당파롤 많이 나뉘어져 있는 가운데 있었다. 당파로 나누어져 싸우고 있을때 영조는 탕평론을 펼쳤지만 큰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정조가 왕이 되었을때 많은 신하들은 정조가 왕이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사람들이 아직도 관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정조에 의해서 청지적인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조선의 10대왕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 폐비윤씨를 죽였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피바람을 일으켰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가운데 왕이된 정조....
즉위식때 첫번째로 이 말을 하였다고 한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들은 조정의 신하들은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의 즉위때 정치적인 보복은 없었다. 오히려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론을 발전시켜서 당파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즉위때 수많은 암살의 위협을 받았다.


경희궁은 조용했다. 평일이라고 해도 다른 궁궐들은 많은 사람들도 붐빔다. 그러나 경희궁은 너무 조용했다. 경희궁 역시 우리 역사의 한 공간이고, 조선의 5대 궁중 하나인데 찾는이가 적었다는 것은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한 경희궁....

오래전 영조와 정조를 기억해 본다.

무수리의 아들 영조, 그리고 죄인의 아들 정조....


숭전문 역시 문에 세개가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며, 문 밖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문관들이, 왼쪽은 무관들이 다니는 문이다.

왕이 다니는 길 가운데를 보면 중간에 계단이 끊어져 있는 듯 하다. 바로 답도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숭전문 앞 계단 답도에는 황새가 새겨져 있다.

아니 왕이 다니는 계단에 답도가 길이 막힌듯하다. 그렇다면 왕은 어떻게 이 답도를 지나갔을까? 답도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했을까?

아니다. 왕이 계단을 스스로 걸어서 올라갔을리는 없다. ^^


지금이 조선시대는 아니고, 문도 가운데 문 밖에 열려져 있지 않아 왕도를 걸어, 왕의 문으로 숭전전에 들어갔다.


[품계석]
숭전전 마당에는 품계속이 놓여져 있디. 숭전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궁광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연회, 사집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졌던 곳인데, 관리들은 자신의 품계에 맞게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조선시대네는 모두 정, 종 9품으로 되어 있다.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종3품....종9품까지 모두 36개(문과, 무과 각 18개)로 되어 있다. 품계석은 3품까지는 정종품계석이 모두 있지만 4품~9품가지는 정품게석만 있다.


[숭정전]
숭정은 2단 월대 위에 세워졌다. 월대는 그 건축물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숭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되어 있으며, 그 크기면은 다른 궁궐의 정전에 비해서 참으로 왜소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 숭전전은 복원한 것이다. 원래 있던 숭정전은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일본인 사찰에 팔았다. 그 사찰은 현재 동국대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정각원이 원래 사정전 건축물이다.


[드므]
월대 위에 드므가 놓여져 있다. 조선의 궁궐은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화재체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드므에 물을 담아놔 소화기 기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드므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화마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화마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통해서 화재를 막고자 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숭전전 내부이다.

왕좌가 있으며, 그 뒤에 일월오봉병이 보인다. 일월오봉병은 왕의 뒷편에 언제나 놓여져있는 병풍이다.

다섯개의 봉우리와 해와 달이 그려져 있는 그림으로 이는 왕이 해와 달과 같이 백성들을 늘 비추면서 잘 다스리는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제천장을한번 살펴 보다.

용 두마리가 정전 위를 날고 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용의 발가락 갯수를 세어보자.

용의 발가락이 모두 7개이다.

어떤 이는 용 발가락 7개는 황제만 사용할 수 있고 그 아래는 왕이 사요할 수 있는 거라고 하기도 하지만, 내가 알기에는 황제가 사용하는 용의 발가락은 5개이며, 왕은 4개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귀족들이나 관리들은 용의 문양을 사용하고 싶으면 발가락이 숫자를 왕이 사용하는 것으로 범하지 않도록 잘 조절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