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지니 기억속의 역사

병자호란 일지

지니쌤 동진이 2017. 9. 12. 21:14

*김훈 선생님의 남한산성 소설에서 퍼온 것입니다.

소설이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왕조 실록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병자년(1636년) 12월 4일부터 정축년(1637년) 2월 5일까지 입니다.

인조왕이 삼전도 굴욕이 있었던 날은 정축년 1월 30일이며,

김훈 선생님의 일지는 2월 2일로 끝이 납니다.


2월 8일 한 줄 "소현세자 일행이 심양으로 출발하다."만 제가 삽입한겁니다.


지도 역시 김훈 선생님의 소설에서 캡쳐 한것입니다.

이 지도는 <남한산성 고지도>를 기초로 하여 편집한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일지]


병자호란 일지 47일간의 굴욕

인조14년(1636년) 병자년

12월 4일(음력)

적병이 송도를 지나자 파천하기로 하고 종묘사직의 신주와 함께 빈궁을 강화도로 보내다.
최명길을 적진에 보내 강화를 청하여 진격을 늦추도록 하다,
임금이 수구문으로 나가 남한산성에 도착하다.
김류가 임금에게 강화도로 피할 것을 권하다.


12월 15일
임금이 새벽에 산성을 출발하여 강화도록 향하다가 성으로 돌아오다.
최명길이 직전에서 돌아와 왕제와 대신을 인질로 삼기를 요구한다고 전하다.
임금이 수어사 이시백의 청에 따라 체찰사 이하 모든 장수를 불러 유시하다.
눈이 많이 내리고 유성이 나타나다.


12월 16일
임금이 남한 산성에 있다. 성첩을 순시하고 사졸을 위로하다.
유성이 나타나다.


12월 17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김류와 홍서봉이 강화를 청하다.
예조판서 김상청이 화의의 부당함을 극언하다.


12월 18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김상헌 장유, 윤희를 비국당상으로 삼다.


12월 19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적병이 남벽에 육박하자 화포로 물리치다.


12월 20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오랑케 사신 세 명이 성 밖에 도착하다.
임금이 각 도의 군대를 선발해 적을 치게 하라고 명하다,


12월 21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김신국 이경직 등이 오랑캐 진영에서 돌아와 사정을 아뢰다.


12월 22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삼사가 주화를 내세운 사람을 참하도록 청하다.


12월 23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자모군등이 출전하여 오십 명 가까운 적을 죽이다.


12월 24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신하를  거느리고 망궐례를 치르다.
진눈깨비가가 그치지 않자 임금이 세자와 승지 사관을 거느리고 날씨가 개기를 빌다.


12월 25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예조가 온조 사당에 제사를 지내자고 아뢰다.


12월 26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강원도 영장 권정길이 병사를 거느리고 검단산에 도착했으니 습격을 받고 패하다.


12월 27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이기남이 소 두 마리, 돼지 세 마리, 술 멸 병을 오랑캐 진영에 가지고 가서 전했으나 받지 않았다.


12월 28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최명길이 강화에 대해 아뢰다.
선전관 민진익이 성 밖으로 나가 각지의 군중에 명을 전하고 돌아오다.
임금이 입은 옷을 벗어 그에게 내리다.


12월 29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북문 밖으로 출병하여 진을 쳤는데 적이 싸우지 않다.
날이 저물 무렵 적이 엄습하여 별장 신성립 등 여덞 명이 죽고 사졸의 사상자도 매우 많았다.


12월 30일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간관이 오랑캐 진영에 사람을 보내지 말기를 청하니, 임금이 윤허 하지 않았다.


인조15년 (1637년) 정축년

1월 1일
임금이 남한산성 행궁에 있다.
백관을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다.
비국낭청 위신보를 파견하여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오랑캐 진영에 가서 새해 인사를 하고 형세를 엿보게 했으나, 청나라 장수가 “황제가 이미왔으므로 마음으로 받지 못한다.”며 되돌려 보내다. 일식이 있다. 삶은 고기와 찐 콩을 상첩의 장졸에게 내리도록 명하다.


1월 2일
홍서봉, 김신국, 이경직 등이 올아캐 진영에 가서 칸의 글을 받아 오다.
이성구가 장유, 최명길, 이식으로 하여금 답서를 작성할 것을 청하다.
완풍부원군 이서가 군중에서 죽다.


1월 3일
동양위 신익성이 오랑캐의 글을 태워 버리자고 상소하다.
홍서봉, 김신국, 이경직 등이 최명길이 지은 국서를 들고 오랑캐 진영에 가다.


1월 4일
김상헌이 “오랑캐에게 답서를 보내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한 뜻으로 싸우고 지키는 데 대비해야 한다.”고 아뢰고, 사간 이명웅, 교리 윤집, 정언 김중일, 수찬 이상형 등이 “최명길의 죄를 다스려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 시키라."고 아회다.
선전과 민진익이 여러 진의 근왕병들에게 조정의 명을 전하겠다고 청하여 적의 화살을 맞으면서 세 번이나 나갔다 들어오다.


1월 5일
자원 출전한 김사호가 성 밖을 순찰하다 도망하는 군사를 붙잡아 효시하다.
전라 병사 김준룡이 군사를 거느리고 광교산에 주둔하여 전황을 알리다..


1월 6일
함경 감사 민성휘가 군사를 거느리고 강원도 금화현에 도착했다는 장계가 들어오다. 사방에 안개가 끼어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다.


1월 7일
임금이 성첩을 지키는 장졸을 위로하다.


1월 8일
임금이 대신들을 불러 계책을 묻다.
관량사 나만갑이 남은 군량미가 이천팔백여 석이라 아뢰다.
예조가 “날짜를 다시 받아 온조왕의 제사를 정성꺽 치르자.”고 청하다.


1월 9일
김류, 홍서봉, 최명일이 사신을 보내 문서를 오랑캐 진영에 전하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사신 파견을 반대하다.


1월 10일
(기록 없음)


1월 11일
해가 뜰 무렵, 임금이 원종대왕의 영정에 제사를 지내다.
김류, 홍서봉, 최명길 등이 글을 보낼 것을 굳이 청해 임금이 열람하고 고칠 곳을 묻다.
최명길이 문장의 자구를 고치다.
푸르고 흰 구름 한 다닥이 동방에서 일어나다.


1월 12일
(기록 없음)


1월 13일
홍서봉이 “정명수에게 뇌물을 주고 강화를 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하자 임금이 비밀리에 정명수에게 은 일천 냥을 용골대와 마부대에게 삼천 냥씩 주게 하다.
임금이 세자와 성을 순시하고 장사들을 위로하다.
동풍이 크게 불다.
헌릉에 불이 나 사흘동안 화염이 끊이지 않았다.


1월 14일
날씨가 매우 추워 성 위에 있던 군졸 가운데 얼어 죽은 자가 있다.


1월 15일
남병사 서우신과 함경 감사 민성휘가 군사를 합쳐 양근에 진을 쳤는데, 군사가 이만 삼천이라 일컬어지다.
평안도 별장이 팔백여 기병을 거느리고 안협에 도착하다.
경상 좌병사 허완이 군사를 거느리고 쌍령에 도착했으니 싸우지도 못한 채 패하고, 우병사 민영은 싸우다가 죽다.
충청 감사 정세규가 용인의 험천에 진을 쳤으나 패하여 생사를 모르다.


1월 16일
오랑캐가 ‘초항’이라는 두 글자를 기폭에 써서 보이다.
용골대가 홍서봉, 윤휘, 최명길에게 “새롱누 말이 없으면 다시 올 필요가 없다.”고 하다.


1월 17일
홍서봉 등이 무릎을 꿇고 칸의 글을 받아 돌아오다.
그 글에 “그대가 살고 싶다면 빨리 성에서 나와 귀순하고, 싸우고 싶다면 속히 일전을 벌이도록 하라. 양국의 군사가 서로 싸우다 보면 하늘이 자연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씌어 있다.


1월 18일
임금이 적진에 보낼 문서를 읽고 최명길에게 온당하지 않은 곳을 감정하게 하다.
최명길이 수정한 글을 보고 예조판서 김상헌이 통곡하여 찢어 버리고 “먼저 신을 죽이고 다시 깊이 생각하라”고 아뢰다.
김상헌의 말뜻이 간절하고 측은해 세자가 임금 곁에서 목 놓아 울다.
눈이 크게 오다.


1월 19일
오랑캐가 보낸 사람이 서문 밖에 와서 사신을 보내라고 독촉하다. 우상 이홍주와 최명길 윤휘를 보내 오랑캐 진영에 가게 하다.
오랑캐가 성 안에 대포룰 쏘아 죽은 자가 생기자 사람들이 두려워 하다.
정온이 문서에 신이라 언급한 것을 들어 “백성들에게 두 임금이 없는데 최명길은 두 임금을 만들려 한다.”는 내용의 차자를 올리다.


1월 20일
대사헌 김수현, 집의 채유후, 장령 임담, 황일호 등이 청대 하여 “국서에 신이라고 일컫으면 다시는 여지가 없게 된다..”고 아뢰다.
최명길이 “늦추는 것은 빨리 일컫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다.
이홍주 등이 지난번 국서를 가지고 오랑캐 진영에 가서 답서를 받아 오다.
그 글에 “그대가 성에서 나와 귀순하려거든 먼저 화친을 배척한 신하 두 세명을 묶어 보내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다.


1월 21일
이홍주 등이 “화친을 배척한 신하를 우리가 다스리도록 결재해 달라.”는 내용의 국서를 들고 오랑캐 진영에 가다.
저녁에 용골대가 서문 밖에서 국서를 돌려주며 “그대 나라가 답한 것은 황제의 글 내용과 달라 받지 않는다.”고 말하다.


1월 22일

최명길이 “다시 문서르 작성해 회답하자.”고 아뢰다. 화친을 배척한 사람에게 자수하도록 하다. 세자가 봉서를 비국에 보내어 “죽더라도 내가 성에서 나가겠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다.
오랑캐가 군사를 나누어 강화도를 범하겠다고 큰소리치다.
오랑캐 장수 구왕이 군사를 삼만을 거느리고 갑곶진에 주두나면서 홍이포를 발사하자 수군과 육군이 겁에 질려 접근하지 못하고, 적이 이 틈을타 급히 강화도 건너오다. 전 우의정 김상용이 죽다.
강화도가 함락되던 날, 유사와 부녀 중에 자결한 자와 굶복하지 않고 죽은 자가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월 23일
김상헝인 적진에 나아가 죽게 해줄 것을 청하다. 밤중에 적이 서쪽에 육박하자 수어사 이시백이 힘을 다해 싸워 적이 무기를 버리고 물러가다.
전교리 윤집, 전 추찬 오달제가 척화신으로 오랑캐의 칼날을 받겠다고 상소하다.


1월 24일
적이 망월봉에서 발사한 포탄이 행궁으로 떨어지다.


1월 25일
대포 소리가 종일그치지 않고 성첩이 탄환에 맞아 허물어져 군사드의 마음이 흉흉하다. 용골대와 마부대가 “국왕이 성에서 나오지 않으려거든 사신은 다시 오지 말라.”고 하여 그동안의

국서를 모두 돌려주다.


1월 26일
훈련도감의 장졸와 어영청의 군병이 대궐 밖에 모려 화친을 배쳑한 신하를 오랑캐 진영에 보낼 것을 청하다.
이때 처음으로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듣고 임금이 울면서 말을 하지 못하다.
삼사가 통곡하며 출성을 만류하자 임금이 “군정이 변했고 사태도 달라졌다. 나의 자부들이 모두 잡혔고 백관의 족속들도 북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니 혼자 산들 무슨 면목으로 지하게서 보내겠는가?”라고 말하다.


1월 27일
이홍주, 김신국, 최명길이 글을 받들고 오랑캐 진영에 가다. 그 글에서 “조지를 분명하게 내려 신이 안심하고 귀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하다.


1월 28일
문서를 거두어 모두 태우다. 정온이 칼로 스스로 배를 찌르고, 김상헌이 목을 매었으나 죽지않다.


1월 29일
윤집, 오달제가 하직 인사를 하자 임금이 오열하며 술을 내리다.
최명길이 두 사람을 이끌고 청나라 진영에 가다.


1월 30일
삼전도에서 임금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모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다.
임금이 밭 한가운데 안장 진퇴를 기다리다 해질 무렵 비로소 도성으로 돌아가게 되다.
임금이 송파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는데 백관들이 앞 다투어 어의를 답아 당기며 배에 오르다.
사로잡힌 부녀들이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며 울부짖다.
인정 때가 되어 창경궁 양화당으로 들어가다.


2월 1일
몽고병들이 남한산성 안에 있었는데, 살림집이 대부분 불타고 시체가 길거리에 널리다.
용골대와 마부대가 임금에게 “황제가 내일 돌아갈 예정이니 나와서 전송하라.”고 요청하다.
왕세자와 빈궁, 봉림대군과 부인은 청나라 진중에 머물고 인평대군과 부인은 돌아오다.


2월 2일
칸이 삼전도에서 철군하자 임금이 전곶장에 나가 전송하다.


2월 8일
소현세자 일행이 심양으로 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