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성남시 문화유산

판교박물관

지니쌤 동진이 2017. 7. 13. 10:52


며칠 전 판교박물관에 다녀 왔다.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찌나 더운지 집에 갈때는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찾아보지 못했던 판교 박물관...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지만 선사시대~조선시대까지의 주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백제와 고구려의 돌방무덤이 모형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하에는 전통 보드게임(놀이기구)들을 비롯해 여러가지 체험 할 수 있는 시설들은 아이들과 학생들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에게도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었다.


판교 박물관은 연중 무휴이며 무료 입장이다.


구석기시대(BC 약70만년전)



구석시 시대 사람들은 이동 생활을 했다.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으며, 주먹도끼(뗀 석기)등을 사용하였다.


                    뚜르개(구석기), 찌르개 (구석기)


이런 석기들은 대체로 사냥이냐 채집하는데 사용하였다. 특히 찌르개가 인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유물은 주먹 도끼(뗀석기)이다. 이 찌르개는 나무 등에 연결해서 마치 창 처럼 사용했던 도구이다. 돌과 나무를 연결하여 점차 발전하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구석기 시대의 이런 도구를 누가 비웃을을 수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방송해 주는 "정글의 법칙"을 보면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즐기기만 하지만, 그 현장에서 한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라면 며칠도 버티지 못할수 도..... 


신석기 시대(약 BC8000년전)


구석기를 지나 신석기 시대가 오면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농경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정착을 하였고, 대체호 강가나 해안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물은 생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오랜가뭄 속에서 비가 오지 않았을 때 저수지에 물이 마르고, 땅이 갈라지는 모습 속에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닭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쏟아져 피해가 오기 시작하니 이제는 다시 비가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니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신석기 시대에는 신석기 혁명이 있었다. 같은 돌을 사용했지만 그 돌을 사용하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토기를 만들었고, 돌로 농기구를 만들었고, 가락바퀴와 뼈 등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아마 내가 정글속에 들어간다면 돌과 뼈를 이용해서 옷을 만들어 입을 정도의 기술은 없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 장인들의 기술은 실로 놀랍고 대단하다. 이는 신석기혁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전혀 없다.



               빗살무늬 토기(신석기)


청동기 시대는 약 BC 2000년


청동기시대 북방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자리 잡고 있었더. 남쪽에는 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적인 자료가 많지 않아 정보가 거의 없다. 고조선은 BC2333년에 건국되었고 단군신화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는 계급사회가 아니었지만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서는 계급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게 되었고, 사유 재산이 생겼으며, 이를 빼앗고 뺏기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무기들이 있었다. 청동을 확보한 부족이 당연 우세하였으며, 지배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에도 돌로 만든 농기구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반달돌칼이 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의 가락바퀴... 이런 말을 하면 좀 속물 같지만... 시험시간에 가락바퀴가 나오면 신석기 시대를 생각하시길...



                구멍무늬토기, 반달돌칼, 가락바퀴

                       돌화살촉


고조선 이후 부여가 그 뒤로 이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가 열렸다. 가약국도 있었지만 가야국은 연맹국가였고 고대 국가로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국시대라고 부른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국가 중에 백제가 가장 먼저 전성기 시대를 보냈다. 전성기를 진내 국가가 한강 유역을 자치하였다. 이들에게 한강 유역은 중요했다. 특히 신라는 동남쪽에 고립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강유역을 차지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바로 중국과의 교역 때문이었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때 전성기를 가졌다. 한강 유역을 자치하려 하였던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전사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5세기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때 전성기였다. 특히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인해서 백제의 개로왕이 전하였고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고,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게 넘겨 주었다.

고구려가 무섭게 남하하자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견제 하였다.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바로 이때가 신라의 전성기였다. 백제와 신라 연합군은 고구려를 치고 올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그곳은 원래 백제의 땅이었기 때문에 백제가 차지하기로 하였지만 신라의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탐냈다. 진흥왕과 성왕은 서로 다투었고, 관산성에서 전투에서 진흥왕이 승리를 하였다. 이때 백제 성왕은 전사를 하였고 한강유역을 내주고 말았다. 성왕은 수도를 부여로 옮긴 왕이기도 했다.


넛못, 굽다리 접시


신라 진흥왕의 배신으로 백제와 신라의 동맹을 깨지고 말았다. 백제는 신라를 위협했고, 위기를 느낀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신라는 당나라에 도움을 구했다. 나당 연합을 이루어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668년 멸망하고 말았다. 리로서 남쪽에는 신라, 북쪽에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가 세워졌고 남북국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고려(918)


그리고 이후 918년 고려가 들어섰다.


                          청동쌍봉문거울

고려철마(고려인들의 민간신앙)


 조선(1392년)


고려는 918년 왕건이 건국했다. 그리고 1392년 신진사대부(조광조 등)와 신흥 무인세력(이성계 등)이 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하였다. 아래는 조선시대 유물이다.


청동곡도, 반지, 범자문동경, 청동거울노리개


이렇게 1층에는 선사시대~조선시대까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넓은 규모는 아니지만 작은공간속에 알차게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의 일상 생활을 옅볼 수 있습니다.

이제 지하게는 몇몇 무덤들이 있습니다.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서 고구려와 백제의 돌방무덤의 흔적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 무덤들중 백제1호돌방무덤과 고구려1호 돌방무덤 사진을 함께 감상해 봅시다.

백제 1호 돌방무덤(판교동에서 발굴)





링크는 백제동방무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유튜브동영상입니다.(위 영상과 동일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wsxgpPYXyY


고구려 1호 돌방무덤(삼평동에서 발굴)






링크는 고구려 동방무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린 유튜브동영상입니다.(위 영상과 동일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M5yMGuv-Y


백제의 돌방무덤과 고구려의 돌방 무덤은 거의 비슷합니다. 아마도 그 왕족들이 같은 혈통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부여의 후예가 고구려를 그리고 백제를 세웠기 때문에 그 장례문화가 전해져 내려온 듯 합니다.


이렇게 고구려와 백제의 돌방무덤을 살펴 보는 가운데 길에 어린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가족들이 함게 체험할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있습니다.


 체험학습


전통보드게임_참고누

전통 보드게임_저포

전통 보드게임_쌍육

                  ▲ 고분발굴체험

▲ 유물 조립 체험

유물 시템프 찍기

                  게임

                  퀴즈게임

판교박물과 포토죤


 성남 시민들의 기증품들_전시되어 있는 기증품 들 중 몇가지만 올립니다.


양영중학교 졸업앨범. 제가 양영중학교 졸업생입니다. 출신학교 졸업앨범이 보이니 느낌이 다르네요.


신익희 선생님의 글씨 입니다. 신익희 선생님은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을 하셨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을 하셨습니다.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고, 제헌국회 부의장을 맡았습니다. 3대 대통령 선거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했지만 선거 운동 기간 돌아가셨습니다.

4대 대통령 후보 역시 선거 운동중 죽어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만이 찝찝합니다. 독재자와 맞뭍어서 두번 연속 상대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죽었고, 이승만이 독재를 계속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분들의 죽음이 이승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신익희 선생님께서 양영중학교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네요.^^


 박물관을 나오면서



박물관에서 나오기 전 1층에서 2층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물관이 너무 한적했기 때문이다. 동네에 있는 작은 박물관들이 대체로 한것을 자주 본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내가 간 날만 그 시간에만 한적한거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 한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선사시대에서 부터 시작해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까지... 그 선조들의 발자취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알고, 그 역사를 통해서 배움을 가져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성남시민들이 많아 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햇빛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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