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수업/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초등학교5학년 2학기 사회] 1.우리역사의 시작과 발전_3)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_세번째

지니쌤 동진이 2017. 8. 14. 21:15

초등학교 사회 1.우리역사의 시작과 발전_3)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 요약정리및 해설_세번째(42-45쪽)


1.우리역사의 시작과 발전

  1)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

  2) 최초의 국가 고조선

  3)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

  4)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3.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


 삼국 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아봅시다.(38쪽)


신분제도_함께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신분이 정해짐


해설

구석기 시대와 신석시 시대에는 계급이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사회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청동기로 무기를 만들었고, 잉영생산물(남는 곡식)들이 생기면서 부족들끼리 싸우거나 화합하면서 연맹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고대국가의 신분; 귀족, 평민, 노비


1) 귀족: 힘을 가진 집단에 속한 사람
            공을 세운 사람
            귀족은 높은 관리가 됨.
            많은 토지와 노비를 가짐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
2) 평민: 대다수가 평민이었음.
3) 노비: 전쟁 포로
            죄를 지은 사람


해설:

연맹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통합되면서 이기는 쪽은 왕족이나 귀족이 되었고, 진 쪽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고대국가(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신분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 귀족, 둘째 평민, 셋째 노비입니다.
 
왕의 자리는 아들에게 세습되기 시작하였고,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왕과 귀족은 중요한 관직들을 자기들끼리 차지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특권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많은 토지를 소유하였고, 노비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였습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평민이었고, 전쟁 포로나 죄를 지은 사람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라의 골품제가 있습니다. 골품제란 무엇일까요? 골품(骨品制)란 뼈에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나요? 그 말이 아마 여기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뼈에 등급이 있어서, 혈통에 따라 신분이 나누어 지는것 입니다.
신라의 골품제에는 성골(왕족), 진골(귀족), 6두품(평민), 노예가 있습니다. [6두품, 5두품, 4두품, 3두품, 2두품, 1두품] 각 품계마다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능력보다는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신분에 따라서 직업, 옷, 집 크기와 모양도 달랐다.


신분에 따라 집의 크기와 모양,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달랐다.(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2쪽)


무용총 벽화의 접객도(복원도, 중국 지안)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3쪽


 접객도를 보고 알 수 있는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이야기 하여 봅시다.

해설:

접객도는 중국 지린성에 있는 고구려 고분입니다. 무덤의 주인공이 앉아있고, 승려 두 명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시동(侍童:심부름 하는 아이)이 앉아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신분에 따라서 사람크기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을 보고 고대 사람들이 거인이었다. 라는 주장을 하는데 다 허무맹랑한 말입니다.


귀족에 따라 다른 생활을 하였습니다.


1)귀족: 화려하게 장식한 집에서 살음
        좋은 음식을 먹음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음.
        관직에 따라 색이 다름(옷의 모양은 비슷)

2) 평민: 대부분 농민
           갈대잎이나 짚단으로 얹은 초가집.
           보리 조 등 잡곡을 먹음
           베옷을 입음.
          생활이 어려움(세금을 내고 궁궐을 짓거나 성을 쌓는 일에 동원)
3)노비: 가장 낮은 신분
          귀족의 농경지를 경작
          주인집의 여러 일을 함.
          주인의 소유물로 여겨 물건처럼 사고 팔기도 함.


해설:

신분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라 생활모습도 달랐습니다. 신분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신분에 따라서 집이 달랐습니다. 귀족은 화려한 집에서 살았지만 평민은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노비도 평민과 비슷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둘째,  먹는 음식도 달랐습니다. 귀족은 좋은 음식을 먹은 반면 평민과 노예는 잡곡을 먹었습니다. 귀족들은 쌀밥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잡곡이 비싸지만 당시에는 쌀이 귀했고, 쌀이 더 비쌌습니다. 잡곡은 가격이 싸기때문에 평민이나 노비들이 먹었습니다.

셋째,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귀족들은 비단 옷을 입었습니다. 귀족들의 관복은 자색, 6두품의 관복은 비색, 5두품의 관복은 청색을 입었습니다. 사극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관복도 관직에 따라 다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은 관직은 붉은 색, 중간은 청색, 낮은 관직은 청색을 입었습니다. 평민과 노비는 베옷을 입었습니다.
평민은 대부분 농민이었는데 농사도 짓고 나라의 노동도 했기 때문에 힘이 들었습니다. 세금도 내야 했고, 성을 쌓고나 궁궐을 지을 때 동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비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물건처럼 사고 팔았습니다. 수를 셀때도 사람은 한명 두명 세었지만, 노비는 마치 시체를 세듯이 한구 두구 이렇게 세었습니다.


작은 이야기 역사: 고구려 귀족은 어떻게 살았을까?(44-45쪽)


삼국 시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신분에 따라 사는 모습, 할 있는 일, 입을 수 있는 옷 등이 달랐다.
고구려 무덤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당시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 수산리 고분벽화의 묘주 행렬도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4쪽

▲ 수산리 고분 벽화의 영접도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4쪽

해설:

위에는 묘주(무덤 주인) 부부의 나들이 행렬입니다. 묘주가 걷고 있고, 그 뒤에 시동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양산과 같은 것으로 햇빝을 가려고 있네요. 그 뒤에 묘주의 아래로 보이는 사람이 뒤 따라 가고 있으며, 역시 시동이 햇빛을 가려주며 따라가고 있습니다.

아래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영접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무릎을 꿇고 맞이 하고 있습니다.

▲ 안악 1호분 벽화의 건물도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5쪽

▲ 안악 3호분 벽화의 생활도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45쪽

해설:

위에는 기와집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의 집이 분명합니다. 무덤의 주인이 살았던 집인듯 합니다.

아래는 집의 크기나 부엌의 모습으로만 봐도 귀족의 집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