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수업/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초등학교5학년 2학기 사회] 1.우리역사의 시작과 발전_4)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_두번째

지니쌤 동진이 2017. 8. 15. 00:03

1단원 4.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요점정리 및 해설_두번째(56-59쪽)


1.우리역사의 시작과 발전

  1)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

  2) 최초의 국가 고조선

  3)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과 발전

  4)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신라의 삼국 통일과 발해의 건국 과정을 알아봅시다.


나당연합(신라와 당의 연합)_백제 공격
        -백제는 정치가 혼란하여 나당연합군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
        -황산벌전투: 백제의 계백 군사는 5천명으로 김유신 군사5만명을 상대함.
          백제의 저항에 신라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화랑의 활약으로 신라가 이김.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사비(부여)를 빼앗기도 멸망함.(660년)

해설:

김춘추가 당나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자 당은 오케이를 했고, 신라와 연합을 하였습니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이 바로 나당연합니다.

백제는 당시 정치적으로 혼란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나당연합이 백제를 공격한 것입니다.
당은 바다로 금강으로 공격해 왔고 기벌포에서 백제를 이겼습니다. 신라는 김유신을 앞세워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백제의 계백은 황산벌에서 김유신을 막았지만 결국 빼하고 말았습니다.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 바로 화랑들이었습니다.

바다와 육지에도 모두 패한 백제는 수도 사비(부여)를 빼앗겼으며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660년)


나당연합_고구려 공격
        -처음에는 잘 막아냄.
        -오랜 전쟁으로 힘이 약해 있었음.
        -왕보다 강한 힘을 가진 연개소문이 죽자 권력다툼이 일어남.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평양성이 점령되면서 고구려가 멸망함(668년)

해설:

나당연합은 백제를 멸망 시킨 후에 고구려를 공걱했습니다. 고구련느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와 전쟁을 이겼지만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쫓아내고 보장왕을 세우는 등 혼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는 더 혼란에 빠졌습니다.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자기네들끼지 싸운것입니다. 바로 이 틈을 타서 나당 연합군이 공격한 것입니다. 이런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을 제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668년 고구려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 황산벌 전투(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56쪽)


※ 백제, 고구려 부흥운동: 실패


신라의 통일

-당은 백제와 고구려 멸망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함.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당과 전쟁해서 이김.
-신라 문무왕은 당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이룸(676년).


해설

660년 백제가 멸망했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백제의 유민들과 고구려의 유민들은 끝가지 저항하면서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한반도 전체를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때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함께 싸웠습니다. 675년 매소성 전투,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당나라를 몰아냈습니다. 이로서 신라의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676년).


신라의 삼국통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민족 문화가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삼국통일과정(사회과부도89쪽 참고)_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57쪽.


<대조영의 발해건국 선포>(58쪽)
“우리 고구려가 명망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당이 고구려의 옛 당을 지배하고, 유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이곳 동모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당의 추격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를 따르는 말갈족도 함께 하여 새로운 땅을 개척하였습니다. 앞으로 당과 신라에 대항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도록 노력합시다.”


발해의 건국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당은 고구려 땅을 다스리려 함
-고구려 유민들이 저항하자 유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흩어지게 함.
-대조영은 유민들을 모아 동모산 기슭에서 발해를 건국함.

- 발해는 점차 고구려 옛 땅의 대부분을 차지함.
-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과 문화를 이어 받음.


해설

중국에서는 발해가 자기네 역사라고 말을 하지만 발해는 고구려를 이어받은 우니나라 역사입니다. 발해가 우리나라 역사라는 것을 "작은이야기 큰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수막새와 온돌, 그리고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가 바로 그 증거들입니다.


▲지도발해의 건국과정.(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58쪽) 
▲동모산 일대


작은 이야기 역사 발해는 어느 나라를 계승 하였을까?(59쪽)
여러 유적, 유물, 기록으로 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
일본에 처음 간 발해의 사신은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습을 지녔다”라고 말을 하였다. 또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도 발해왕을 고려(고구려)의 국왕으로 표현하였다. 발해인들이 스스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밝힌 것이다.


▲고구려의 수막새, 발해의 수막새
▲고구려의 온돌, 발해의 온돌
▲일본에서 발견된 목간. 일본은 발해에 사신을 보내면서 발해를 고려(고구려)라고 표현하고 발해 사람을 맥인(고구려인)이라고 펴현하였다.

*수막새: 기왓등의 끝에 붙여 만든 기와
*목간: 편지나 문서 등의 글을 적은 나뭇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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