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소중한 우리유산

[수원화성] 화서문, 서노대, 서장대(화성장대), 서암문, 서남암문, 서남각루

지니쌤 동진이 2017. 10. 11. 01:58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정조대왕께서 세운 신도시입니다. 당쟁속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은 행정, 군사, 상업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갖춘 성으로서 정조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성을 쌓을 때 백성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거나, 승려들을 동원하였지만 정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을 쌓는데 동원된 임금을 주었으며, 성과에 따라 지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남겼는데 이는 책임감을 더욱더 주기 위한것이었습니다. 성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곳을 공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에 더욱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성을 쌓는데 모두 6만5천냥이 들어서 공사를 하였는데, 모든 제정 역시 공개가 될 정도로 투명하게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임금을 주고, 성과급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처음 계획은 약 5년이었지만 수원화성은 2년 9개월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제되었습니다.


본 페이지는 화서문(서문)~팔달문(남문)의 성곽길입니다.

화서문(서문)-서북각루-서일치-서포루-서이치-서노대-서장대(화성장대)-서암문-서포루-효원의종-서남치-서남암문-용도동치-용도서치-서남각루(화양루)-남포루-남치-팔달문

참고: 치, 포루, 각루, 포루 등 성곽을 돌며 많은 부분이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부분의 목적이 같이 때문에 생략한 사진들이 종종 있습니다.



▲화서문(華西門)
보물 제403호(1964.9.3)
화서문은 서문입니다.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편액은 화성 초대유수였던 채제공이 쓴 것입니다. 홍예문 좌측에 성문공사 담당하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화성의 성문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는데 이는 성문을 보호하고 방어하고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노대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서 지는 것입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입니다.

▲서장대(화성장대)

장대란 군사를 지휘하는 곳입니다. 화성에는 동장대와 서장대가 있습니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화성장대 연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입니다.


▲서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한 곳에 만든 출입구 입니다. 적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만들었습니다. 사람이나 가축 그리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입니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서암문 밖으로 나가서 찍은 사진 입니다.


▲서남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한 곳에 만든 출입구 입니다. 서남암문은 다른 암문과는 다르게 밖으로 나가면 옹성이 있습니다.

▲서남암문

서남암문으로 나가면 용도동치와 용도서치가 있으며 끝에는 남포루(화양루)가 있습니다.


▲서남각루(화양루)

"각루"는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군사를 지휘하는 장소기도 했습니다. 각루는 모두 4개가 있습니다. 이중 동각남루가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입니다.  화양루(華陽樓)란 ‘화’자는 화성, ‘양’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 아래 팔달문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