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소중한 우리유산

[화성행궁] 좌익문, 중양문, 봉수당, 화로와 드므, 노래당, 낙남헌, 득중정, 장락당

지니쌤 동진이 2017. 10. 14. 18:09

행궁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화산 현류원 참배 목적외에, 왕위 양위 후 수원 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행성보다 규모가 크고 수원 화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좌익문

신풍루를 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문입니다. 좌익이란 곁에서 돕는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각 남쪽 끝은 외정리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전인 봉수당으로 들어가는데, 정문 신풍루와 중양문 가운데 있기 때문에 중삼문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중양문

좌익문을 지나면 중양문이 보입니다. 중양문은 행궁 정전인 봉수당 앞에 있는 문으로 내삼문 입니다.


▲ 봉수당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입니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이 회갑진찬럐를 이곳에서 했습니다. 봉수란 어머니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 라는 뜻입니다.

정조는 이곳에서 신무기인 "매화(일종의 지뢰와 같은 것)"의 성능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파괴되었던 봉수당은 1997년 복원되었습니다.


▲ 화로와 드므

봉수당 앞에 있는 화로와 드므 입니다. 화로와 드므는 궁궐의 정전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드므는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의 화마를 막기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드므에 물을 채워 놓았습니다. 옜날 사람들은 화마가 하늘에서 내려 온다고 생각했는데, 화마가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물에 비췬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도 도망간다고 생각했습니다.


▲ 노래당

봉수당 옆에 노래당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 만든 전각입니다. 낙담헌과 득중정에서 행사가 있을 때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노래란 늙는 것은 운명에 맡기고 평안히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 낙남헌

낙남헌은 일제강점기때 철거되지 않은 전각 중 하나입니다. 낙남헌이란 후한의 광무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궁궐 이름을 남궁이라고 지은 것에서 따 온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각종 행사가 있었으며, 회갑연때 노인 분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회갑연때 이곳에서 특별 과거 시험을 치러 문과 5명, 무과 56명을 뽑기도 했습니다.


▲ 득중정

득중정은 활을 쏘기 위해 지은 전각입니다. 평액을 정조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합니다. 정조는 행차시 활쏘기를 했었는데 4발을 쏘아 4발을 모두 맞추어서 기념 하기 위해 득중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득중적은 활을 쏘아 맞추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추지 못하면 제후가 될 수 없다는 구절에서 득자와 중자를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射中 則得爲諸侯 射不中 則不得爲諸侯)


▲ 장락당

장락당은 혜경궁 홍씨의 침전입니다. 봉수당과 겹쳐 있습니다. 혜경궁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던 정조는 한나라 태후의 거쳐였던 장락궁의 이름을 따서 장락당이라고 지었습니다. 정조는 편액을 직접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