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소중한 우리유산

[화성행궁] 복내당, 유여택, 비장청, 서리청, 남군영, 우화관

지니쌤 동진이 2017. 10. 14. 22:40

행궁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화산 현류원 참배 목적외에, 왕위 양위 후 수원 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행성보다 규모가 크고 수원 화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복내당

복내당이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 유여택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거쳐였습니다. 정조가 내려오면 신하를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다. 유여택은 [시경]에서 주나라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데서 따온 것입니다. 정조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 비장청

화성유수부의 비장들이 사용하던 전각이다. 비장이란 지방관이 데리고 다니던 막료(보좌하는 사람)이다.


▲ 서리청

서리는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을 담당하는 아전으로서 서리청은 그들이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남군영

남군영은 정조의 친위부대였던 장용영 외에 기마병이었던 친군위가 100명이 교대로 근무하던 곳입니다. 반대쪽에 북군영이 있습니다.


▲ 장용영 갑주 배치도


▲ 우화관(복구중)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로 수원부 이전시 건립되었습니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부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고, 외국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나 연회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수원, 광주, 시흥, 과천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문과 별시를 치르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화성 각 건물의 *상량식을 거행할 때 헌관들의 대기장소도로 사용하였습니다.

*상량식(上樑式)은 목조 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에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상량)를 올리고 거기에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