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소중한 우리유산

[화성행궁] 화령전, 전사청, 제정, 운한각, 정조의 초상, 풍화당

지니쌤 동진이 2017. 10. 14. 23:08

화정전은 1801년 순조가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화성행궁옆에 세운 건물로 정조의 초상화를 보셔놓은 영전입니다. 영전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추모하던 곳입니다.


▲ 외삼문

화령전의 정문입니다. 외삼문을 지나면 내삼문이 있습니다. 외삼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화령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행궁 낙남헌을 지나면 전사청을 지나 입장할 수 있습니다.

▲ 전사청

전사청은 나라의 제사를 맡아보던 관아입니다.


▲ 제정

제정은 제례에 사용하는 정화수를 뜨는 우물입니다.  


▲ 운한각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입니다. 정조의 초상화를 봉인한 전각입니다. 운한이란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여 기우제를 했다는 [시경]의 어떤 시에서 따 온것입니다. 제사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월대가 있으며 세개의 계단 중 가운데는 혼령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계단입니다. 왕궁의 가운데 길은 왕도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곳의 가운데 길은 신도라고 부릅니다.



▲ 운한각 월대위의 향로와 드므


▲ 운한각의 정조 초상

수원화성 행궁옆에 있는 화령전의 정전에는 정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정조의 영정은 곤륭포가 아닌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정조는 수원화성에 행차할 때 단 한번도 곤룡포를 입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곤룡포는 병자호란 전에는 명나라 황제가,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나라 황제가 조선에 하사한 제후국의 복식었습니다.
정조는 이런 곤룡포를 벗어 버리고 용이 세마리나 그려져 있는 군복을 입고 행차했습니다. 군복을 입고 다닌 이유에 대해서 어떤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그렇게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치욕을 당하였고 북벌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 꿈을 이어 받아 요동을 점령하고자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니엇을까요?


▲ 풍화당

풍화당은 재실로서 제샹이 있을 때 제를 올리는 사람이 미리 와서 머무는 곳입니다. 풍화는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