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성남시 문화유산

[남한산성"가"코스] 5암문, 연주봉 옹성, 전승문(북문), 지화문(남문), 삼전도비

지니쌤 동진이 2017. 10. 5. 02:07

[남한산성 탐방]


지니의 탐방 "가"코스. 4번 (총 4개로 나누어 올렸습니다.)

종각 -> 행궁 -> 수어장대 -> 서문 -> 북문 -> 종각 -> 남문



10월 2일 남한산성 영화 개봉 하루 전 남한산성에 올라갔습니다. 남한산성은 성남, 광주, 서울, 하남 등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성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7일간 피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병자호란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이 있지만, 간략하게 그 내용은 간단하게 추린 (본 블로그의) "이거 실화냐? 병자호런 서사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blog.daum.net/nasaro1/169 



▲ 5암문

서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에 있습니다. 5암문을 빠져 나가면 연주봉 옹성이 있습니다.

▲  5암문 밖에서 찍은 사진


▲  연주봉 옹성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습니다. 연주봉 옹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며, 다른 옹성들은 나중에 취약한 부분에 추가서 지은 것입니다.

길이가 315미터나 되며 가장 끝 부분에 포루를 설치하였습니다.


▲ 연주봉 끝에 있는 포루


▲ 전승문(북문)

병자호란 당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김류는  300명의 정예병을 내보내 전투를 벌였습니다. 청군이 유인작전을 펼치기 위해 도망갔습니다. 300명의 군사들은 따라가지 않았지만 김류는 유호에게 칼을 주며 따라가지 않는 군인들에게 휘두르게 했습니다. 300명은 모두 산 아래로 내려갔고, 매복하고 있던 청에게 모두 죽이을 당했습니다. 김류는 자신이 잘못 지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짓을 하였습니다.


전승은문 후에 정조가 지은 이름으로 병자호란 당시 치욕적인 패배를 했던 이 전투를 기억하며 지은 것입니다. 역사를 잊지 말고 승리를 각오하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지화문(남문)

남한산성의 정문입니다. 가장 큰 문입니다. 인조가 입성했던 문이기도 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산성에 들어갈 때 흰노루를 보았는데, 좋은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병자호란은 치욕적인 패배를 하였습니다.

지화문의 이름 역시 정조사 지은 이름으로 서로 화목해야 성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삼전도비

삼전도비는 석촌호수에 있습니다.

인조는 남한산성 우익문(서문)으로 나와 삼전도로 향했습니다. 청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세번 절하고 아홉번 모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며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청과 화친하자)과 척화파(청과 싸우자)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하면 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화친을 맺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척화파는 끝가지 반대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청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해 있던 인조는 강화도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강화도에는 봉림대군(왕자)과 세자빈 등 왕실 가족들과 여러 대신들의 가족들이 피난가 있었는데, 모두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이소식을 들은 인조는 항복을 하기로 결심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 삼전도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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