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박물관 탐방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 화협옹주의 얼굴단장

지니쌤 동진이 2019. 10. 7. 15:02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

조선왕실 화협옹주의 얼굴단장
2019년 10월 1일~31일




화협옹주(1733~1752)는 영조의 딸이다. 그는 후궁 영빈이씨에게 태어났으며 사도세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가계도

영조-영빈이씨
       화평옹주(1727-1748)
       화덕옹주(1728.8.3-1731.2.18)
       옹주(1729.12.12-1731.3.21)
       옹주(1732.1.1-1736.4.12)
       화협옹주(1733-1752)-남편 신광수(영의정 신만의 아들)
       장조(사도세자; 1735-1762)

1733년 홍역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화협옹주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남편과 합장되었으며 1970년 이장되었다. 그 뒤 밭으로 사용되다가 2015년 화협옹주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2017년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국립고궁 박불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조선시대 얼굴 단장의 화장문화를 살펴졸 수 있을 것이다.



"화협옹주가 영조의 딸이래..."
"사도세자가 동생이고 영조한테 미움받았다네...."
"딸이여서 그랬나봐...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왕실에서 일곱번째 달로 태어났데"
"영조 나쁘다..."



넓지않은 전시관 속에서 여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남아선호사상이라는 것이 강했다. 아직까지 남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왕실에서 왕위를 이을 아들을 기다렸던 것, 당시 유교문화 속에서 있었던 것이었으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랬동안 가부장주의 속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야 했던 것이 옳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문화 속에서 화협옹주는 일곱번째 딸로 태어나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일곱번째 딸로 태어난 화협옹주는 사도세자의 친누나였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미워하였는데, 사도세자에게 물음을 하고 대답을 하면 영조는 귀를 씻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그 물을 화협옹주의 집 앞에 버렸다는 말도 있다.


사도세자가 죽기 10여년전 먼저 세상을 달리했다. 홍역으로 죽은 것이었다. 영조는 화협옹주를 미워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후에는 미워함고 동시에 외면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딸이기에 왕권에 도전을 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 것이었다.


딸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던 화협옹주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 영조의 견제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화협옹주는 당시 조선시대 유교의 규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자신을 미워한 아버지 영조가 아플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으며, 시댁 부모에게도 효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랜 장수를 했던 영조는 비록 자신이 많은 사람을 준 딸은 아니었지만 자녀를 먼저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애탔던 것으로 보인다. 화협옹주의 묘지명에 영조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묘지석


"기품은 침착하고 맑았으며

어버이 모시기를 정성으로 하고

시아버지 모시기를 한결같이 하였다.

비록 궐내가 평탄치 못한 때에 처하였지만,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 까지

담박하고도 고요하여 조금도 간여하는 바가 없었으니

마치 듣지 못한 듣이 보지 못한 듯이 한 것이 곧 화협의 성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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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기록하는데 눈물 열기가 흘러내린다.

아, 슬프구나. 아 슬프구나!


                    ▲ 지석


여자가 시집을 가면 말을 참아야 하고, 듣어도 못들을 척 하고, 본 것도 못 본척 하는 것이 유교에서 말 하는 미덕이었다. 유교에서는 화장 역시 하나의 도덕 관념으로서 미덕이었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동일시 하였기에 여성들은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는데 노력하였다.

나는 화장을 잘 모르는데, 관람을 하는 한 소리를 들었다.


"조선시대도 별 다르지 않네..."
화장 법을 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 뿐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말 한 것이었다.


"여자가 화장을 하는거 진짜 귀찮은데..."


지금은 여성의 화장이 도덕적 관념으로 미덕이라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말을 한다.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예의이다..."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가꾸기 위함도 있지만 사회적 강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 자신을 가꾸어야 하기도 하며,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에게 화장을 해야하지 않겠나는 등의 알게 모르게 주어지는 압력들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자가 화장을 하던 말던,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남자가 화장을 할 수 도 있는 것이며, 여자도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냥 개인의 취향으로 냅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 조선시대 화장


좌우간 화장은 조선시대 도덕관념의 미덕이었다. 그 방법은,
먼저, 세안을 하고
둘째, 스킨로션과 크림 역할을 하는 미안수, 면약, 화장유를 발라 피부를 촉촉하게 한다.
셋째, 밀랍을 팩처럼 발랐다가 일정시간 후 떼어내기도 한다.

기초 화장후 지분 화장을 하였는데 지분은 연지와 백분을 줄인 말로 화장품을 총칭하는 어휘를 쓰일 만큼 중요한 단계였다.
얼굴을 하얗게 하는 백분으로 미분과 연분을 사용하였다.

얼굴에 분을 바른 후 정갈하게 눈썹을 뽑다 다듬고 눈썹먹으로 선을 그린다. 눈썹은 형태를 수정하여 진수아미(쓰르라미 이마와 나방의 눈썹)로 만들었다.

볼과 입술에 붉은 연지까지 바르면 화장은 마무리 된다.

이런과정을 통해 은은하고 수수한 화장으로 본연의 얼굴을 아릅답게 드러내고자 했던 조선시대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


화장품 자기는 굉장히 작고 아기자기 하였다. 대부분 500원짜리 동전만 다하 해야하나... 직접 비교는 하지 않았지만 육으로 보았을 때 그 지름과 크기는 작았다. 마치 샘풀화장품 용기처럼 보여였다.

화협옹주 모덤에서 빗, 먹, 거울을 포함해 화장품 세트가 출토되었다. 화장용 자기에 분, 연지 등 화장 성분이 남아 있어 연구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출토된 자기는 총 12점인데 대부분 중국 경적진과 일본 아리타에서 제작한 자기이다. 화장춤 용이이기 때문에 화려한 채색과 무늬가 장식된 수입용기가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
화장 용기에는 소나무, 운룡문과 더불어 국화, 연꽃, 철쭉, 매화, 모란, 등나무 등 다양한 화훼문이 장식되어 있다.


청화백자 연꽃넝쿨무의합


▲ 2.청화백자 철쭉칠보무의 합 3. 청화백자 국화넝쿨무늬 합 4.청화백자 송죽무늬 합


▲ 5.청화백자 국화연판무늬 합 6.청화백자 칠보누의 팔각호(국산) 7. 청화백자 모란넝쿨무늬 호


청화백자 풀꽃무늬 잔


▲ 9.청화백자 운룡무늬 잔 10.청화백자 매화칠보무늬 합 11.색회 등나무무늬 접시


 거울


 거울집


 얼레빗


 눈썹먹


 목합


 화장품 성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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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밀랍과 다른육리물 재료를 섞어 크림이나 연고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 화장품이다.
도자기 속의 접시에 기름 성분이 변해 굳어진 것과 납 조각이 있었다. 기름은 다른 재료를 접시 위에 섞어 얼굴에 발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납은 얼굴을 창백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인체에 해롭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파운데이션
피부를 하얗게 하는 흰색 가루는 탄신납(PbCO3)과 활석(Mg3Si4O10(OH)2)이 1:1로 혼합되어 있었다.



블러셔, 립스틱
립스틱과 블러셔 역할을 했던 빨간 가루와 나무도장이다. 주요 성분이 진사(HgS)로 분석되었다. 이는 인체에 해롭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성분이다.




액체류
액체가 들어 있는 도자기 두개 중 하나에는 중성(ph7)으로 특정이온 Na+, NH4+, K+이 높에 나타났고 고운 입자의 흑이 들어 있었는데 얼굴에 팩이나 스크럽 용도로 보인다.

또 다른 용기에는 다량의 개미가 발견되었다. 그 개미는 황개미로 강한산성ph2-3으로 개미산염(포름산염) 보다 초산염(아세트산염)이 약 8배 높게 나왔다. 이를 피부치료 등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은 넓지 않다. 전시의 목적인 조선시대 얼굴 단장의 화장 문화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빨리 돌면 1분도 걸리지 않고 한바퀴를 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화장 문화를 비롯해서 화협옹주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도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니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