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창덕궁 속으로

[창덕궁] 금천교, 진선문, 내병조, 호위청, 상서원

지니쌤 동진이 2019. 11. 26. 01:26

창덕궁(昌德宮)


금천교


[금천교] (보물 제1762호)


내각을 돌아 나오면 금천교가 보입니다. 금천은 태종11년(1411)에 놓았으며, 비단처럼 다름다운 물이 흐른다 해서 금천교(錦川橋)라교 지었습니다. 현존하는 궁궐 석교중 가장 오래된 다리 입니다. 다리 위에 길이 세개가 있으며 가운데 길은 임금만 걸을 수 있는 왕도 라고 부릅니다.



금천교는 두개의 홍예가 받치고 있으며, 각 모서리에 서수가 그리고 아래에는 도깨비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에는 해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궁궐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진선문

진선문


금천교를 지나면 정면으로 진선문이 보입니다. 진선이란 "왕에게 바른 말을 이른다"라는 의미입니다. 진선문을 지나면 전정과 편전이 있는데 궐내각사에서 왕에게 가는 모든 말들이 바른 말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으로 왕의 명령 역시 바른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진선문은 1966년 복원이 되었습니다.


이 진선문에는 신문고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신문고는 억울한 백성들이 북을 치면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문고를 치기 위해서는 정차가 복잡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이 행차할 때 앞을 막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극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내병조, 호위청, 상서원


내병조



진선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길게 늘려져 있는 전각이 보입니다. 기둥과 벽만 남아 있지만 이곳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각이었습니다.

가장 문쪽에 있는 곳이 "내병조"입니다. 현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곳은 병조의 한 관청으로 궐 안에 있다 해서 내병조 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궐의 자물쇠 등을 관리 하였으며, 왕이 행차 할 때 앞길을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문고를 치기 힘들어 왕의 행차를 가로 막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려 했던 백성들을 통제 했던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궐 안의 불을 관리했는데, 춘하추동 그리고 토왕일(입추10일전)때 궐안의 모든 불을 끄고 새로운 불을 만들었습니다.


호위청


호위청


호위청은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인조때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그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에 올랐습니다. 자신이 군대를 움지여 왕을 쫓아냈기 때문에 또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전 그런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상서원


호위청 옆에 상서원이 있습니다. 상서원은 말 그래도 상서로운 기물을 맡는 곳입니다. 옥새, 마패, 절원 등을 관리하였습니다. 왕이 행차할 때 사복시(말을 관리하는 관청)에 연락을 해 필요한 물품을 챙겼습니다.


박자청: 내시에서 1품 벼슬에 오른 사람
진선문과 마주보고 있는 숙장문은 대칭이 아닙니다. 진선문 쪽이 넓고, 숙장문 쪽이 좁습니다. 이를 본 태종은 공사 담당자 박자청을 하옥시켰습니다. 박자청은 자연의 모습을 살리면서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된 테종은 그를 풀어주었으며 그는 이후 공조판서, 우군도총제부판사의 지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