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받은 정릉의 흔적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목이 말라 우물가에 있던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였다. 그는 이성계에게 물을 떠 주며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 이성계가 바가지에 버들잎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었는데, “갈증이 심해 급하게 마시다 체할까 염려되어 그랬습니다”라고 하였다. 후에 그 여자는 이성계와 결혼 했다. 그가 바로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이다.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사랑 하였지만 이방원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첫번째 왕후 신의왕후의 아들인데, 신의왕후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죽었다. 조선 건국 이후 세자 책봉을 하는 가운데 신덕왕후의 아들 이방석 세자가 된 것에 불만을 품고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과 방번, 정도전 등을 죽였다.
제 1차 왕자의 난 링크:
http://blog.daum.net/nasaro1/197
신덕왕후가 죽자 이성계는 경복궁에서 가까운 정동에 릉을 조성하고 늘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방원이 왕이 된 후, 정릉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 하였고, 왕후에서 서모 즉 첩으로 격하시켜 태종이 죽은 후에 위패를 종묘에 모시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릉을 현 성북구로 천장하였고, 한양에 홍수로 광통교가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 등으로 다리를 보수해 모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정릉의 전각으로 태평관을 지었다.
민묘나 다름 없던 정묘는 260년 후 현종10년(1669년)에 왕릉으로 갖추게 되었고, 위패도 정묘에 모셔졌다.
당시 광통교를 공사 했던 흔적은 아직까지 남아있어 청계천을 지날 때 볼 수 있다.
참고:
태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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