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수업/조선시대의 회화

[혜원 신윤복] 주사거배

지니쌤 동진이 2017. 3. 15. 11:22


주사거배(酒肆擧盃)


주사거배란 '술집에서 잔을 들다'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의 술집 그림으론는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술집은 선술집이다. 선술집이라고 하는 이유는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은 여자가 1명 남자가 6명이다. 먼저 중앙에 붉은 옷을 입고 초립을 쓴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은 조선 후기 유흥계의 총아 별감이다. 이들은 놀고 먹는 곳이라면 빠지는 곳이 없었고, 술집의 주 고객이기도 했다.

가장 오른쪽의 사람의 옷을 보았을 때 의금부 나장이다. 이 남자가 위에 걸치고 있는 옷은 까치등거리 혹은 더그레라고 한다. 쓰고 있는 모자는 끙이 뽀죡해서 깔대기라고 한다. 의금부는 왕명을 받아 형장을 써서 죄인을 문초하는 곳이다. 다른 관청에서도 물론 나장이 있지만 끗발은 의금부 나장이 제일이다.


이 그림은 지금 별감이 안주를 집고 있고 별감주위 인물들은 순서를 가다리고 있으며 나장을 위시한 오른쪽 사람들은 그만 마시고 가자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일 왼쪽 상투 차림으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 이 사람은 '중노미'로 술집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다. 술잔을 나르거나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하는 허드렛일을 한다.


서울에 값을 치르고 사먹을 수 있는 술집이 언제 생겼는지 기록이 없다. 조선 전기 기록에는 술집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 술집에 대한 기록은 18세기 영조때 금주령을 내린것이다. 영조재위 53년 대부분 금주령이 내려진 시대였고, 정조때는 조금 느신해졌다.

정조때 술집이 늘어난 것으로 인해서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는 대사간 홍병성이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고 정조에게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좌우간 정조때 술집이 늘어난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에 술집이 왜 늘어나게 되었을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조선후기에 와서 금속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후에 주점이 출현한 것이 아닌하한다. 또 18세기에는 농업량이 증가하고 상업이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달하였던 바 여기에서 발생한 약간의 경제적 이영가 주점과 같은 유흥적 소비적 공간의 출현을 축발시킨것으로 보인다.



[참고] 아래 링크로 조선후기 술에 대한 또 다른 그림, 김후신의 대쾌도와 김준근의 색주가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블로그 다른 게시글입니다. ^^)

http://blog.daum.net/nasaro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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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강명관, [조선풍속사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서울: 푸른역사, 2010년), 31~51에서 요약및 발췌 정리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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