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수업/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초등학교6학년 1학기 사회] 1. 조선사회의 움직임_1)전란의 극복_세번째

지니쌤 동진이 2017. 3. 31. 18:45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1. 조선사회의 새로운 움직임

   1) 전란의 극복

   2)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조선

   3) 서민 문화의 발달

   4) 조선 시대 여성의 삶

   5) 조선을 뒤덮은 농민의 함성


청나라는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 하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의 요구를 반대하였고 청나라는 1636년 12월 2일 청군은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심양에서 출발했습니다(병자호란).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고 했지만 길목이 막혀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1637년 1월 27일 항복을 하였고 28일부터 포격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1월 30일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레(세번 절하고 아홉번 고개를 조아리는것)"를 행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전쟁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3정승6판서의 자녀 20여명은 청나라의 인질로 붙잡혀 갑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는등 친하게 지냈지만 봉림대군은 청나라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1645년 2월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소현세자는 청나라의 문물을 가지고 왔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습니다. 소현세자는 귀국한 해 5월에 의문의 죽음을맞이합니다. 그리고 봉림대군(효종)이 왕이 됩니다. 효종은 청나라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송시열등과 함께 북벌론을 내세우며 군사력을 키웁니다.

청나라는 1654년과 1658년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데 조선에 지원 요청을 합니다. 효종은 청나라를 위해서 군대를 보내 승리를 거둡니다. 청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훈련시킨 군대를 청나라에 지원 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청나라는 더욱더 강해졌고 효종은 청나라를 한번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강화 초지진(인천광역시) 효종때 해안지역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만든 시설


독도는 우리땅

일본은 조선시대에서 울릉도와 독도까지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조선 어민들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안용복은 숙종 때 사람으로 동래 수군에 복무하던 중 1693년(숙종19년)에 울릉도 근처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일본인들에게 납치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가서 울릉도가 우리 영토임을 주장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1696년에도 10여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 출어하여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울릉, 우산양도 감세관을 자칭하며 일본 호우키 주에 가서 태수에게 사과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조선 조정의 허락도 없이 국제 분쟁을 일으켰다 하여 극형이 논의되었으나 남구만의 만류로 귀양에 그쳤습니다. 안용복은 두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하는 일본 막부의 문서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사회교과서 15쪽

사회교과서 15쪽

                 동국대지도. 독도와 우산도(독도)가 그려져 있다. 사회교과서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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