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역사여행/소중한 우리유산

[전주 경기전] 전주사고, 예종대왕태실

지니쌤 동진이 2017. 5. 3. 11:09

전주사고는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장소 입니다. 정전 오른쪽에 있어요. 목조 건물이기 때문에 실록이 상하지 않게 2층 구조로 만들어 땅에서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과 예문관을 상설하고 사관을 두어 날마다 시정을 기록하였습니다. 한 임금이 정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가 이를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봉안하여 왔습니다.


전주사고는?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한찬 것은 1409년(태종9)부터 1413년(태종13)까지 4년간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한 것이 처음입니다. 1426년(세종8)에 정종실록 6권을 편찬하곴고 1413년(세종13)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 정종 태종의 3조실록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 춘추관과 1부는 충주사고에 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2부는 시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므로 1445년(새종27)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 성주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분장하였습니다.
1592년(선조25) 인진왜란때 춘추관 충주 성주의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었습니다. 그것은 손홍록,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 사수 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주 사고에는 실록 784권 614책 47궤 기타 전적이 64종 15궤가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때 실록각은 소실되었는데 1991년 이를 복원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국보 제 151호)은 1997년 유네스크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기전내 조선사고 소개글-


전주사고

오른쪽에 계단이 보이지요. 사고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들어가면 조선왕조실록에대한 풍부한 설명이 있습니다.

사관과 사초

태종실록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관은 언제나 왕과 동행하였으며 기록을 하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사냥을 하러 나가는데, 따라 오지 말라 하며 사관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원이 말에서 떠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방원은 창피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후에 태종실록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테종대왕께서 사냥하시다고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를 사관에게 말 하지 말라고 하셨다"라고 말입니다.


실록과 사초는 왕은 볼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선대왕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이를 편찬한 사람들이 왕의 눈치를 본다면 정확하게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0대왕 연산군을 기억하시나요? 실록을 보고 자신의 생모가 사약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그 사건에 관게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사건 갑사사화(甲子士禍; 1504년 연산군 10)가 일어났습니다. 이로인해 연산군이 폐위되는 일이 발생가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의 보관 방법.

과학적인 방법으로 오랜세월동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조선왕조 실록 사고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의 편찬방법

예종대왕태실

전주사고에서 대나무 숲을 지나 작은 문을 지나면 예종대왕태실(조선8대왕)이 있습니다.

예종대왕(조선8대왕) 태실을 담아 넣어둔 석실입니다. 왕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소중이 석상에 보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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